곽재구 - 그대 잘 가라

그대 잘 가라

 

그대여 흘러흘러 부디 잘 가라

소리 없이 그러나 오래오래 흐르는 강물을 따라

그댈 보내며

이제는 그대가 내 곁에서가 아니라

그대 자리에 있을 때 더욱 아름답다는 걸 안다

어둠 속에서 키 큰 나무들이 그림자를 물에 누이고

나도 내 그림자를 물에 담가 흔들며

가늠할 수 없는 하늘 너머 불타며 사라지는

별들의 긴 눈물

잠깐씩 강물 위에 떴다가 사라지는 동안

밤도 가장 깊은 시간을 넘어서고

밤하늘보다 더 짙게 가라앉는 고요가 내게 내린다

이승에서 갖는 그대와 나의 이 거리 좁혀질 수 없어

그대가 살아 움직이고 미소짓는 것이 아름다와 보이는

그대의 자리로 그대를 보내며

나 혼자 뼈아프게 깊어가는 이 고요한 강물 곁에서

적막하게 불러보는 그대

잘 가라

by Bathory | 2009/11/18 12:50 | 트랙백 | 덧글(0)

DJ서거에 부쳐 2

오늘은 흐드러지게 화창한 일요일...DJ의 영결식이 있는 날이다.

몇몇 자료들을 블러그에 옮긴다.

먼저 몇일 전 공개 된 DJ의 일기부터....

<인생은 아름답고 역사는 발전한다>


2009년 1월 1일

새해를 축하하는 세배객이 많았다.
수백 명.
10시간 동안 세배 받았다.
몹시 피곤했다.
새해에는 무엇보다 건강관리에 주력해야겠다.
‘찬미예수 건강백세’를 빌겠다.


2009년 1월 6일

오늘은 나의 85회 생일이다.
돌아보면 파란만장의 일생이었다.
그러나 민주주의를 위해
목숨을 바치고 투쟁한 일생이었고,
경제를 살리고 남북 화해의 길을 여는
혼신의 노력을 기울인 일생이었다.
내가 살아온 길에 미흡한 점은 있으나 후회는 없다.


2009년 1월 7일

인생은 생각할수록 아름답고
역사는 앞으로 발전한다.


2009년 1월 11일

오늘은 날씨가 몹시 춥다. 그러나 일기는 화창하다.
점심 먹고 아내와 같이 한강변을 드라이브했다.
요즘 아내와의 사이는 우리 결혼 이래 최상이다.
나는 아내를 사랑하고 존경한다.
아내 없이는 지금 내가 있기 어려웠지만
현재도 살기 힘들 것 같다.
둘이 건강하게 오래 살도록
매일 매일 하느님께 같이 기도한다.


2009년 1월 14일

인생은 얼마만큼 오래 살았느냐가 문제가 아니다.
얼마만큼 의미 있고 가치 있게 살았느냐가 문제다.
그것은 얼마만큼 이웃을 위해서
그것도 고통 받고 어려움에 처한 사람들을 위해
살았느냐가 문제다.


2009년 1월 15일

긴 인생이었다.
나는 일생을 예수님의 눌린 자들을 위해
헌신하라는 교훈을 받들고 살아왔다.
납치, 사형 언도, 투옥, 감시, 도청 등
수없는 박해 속에서도 역사와 국민을 믿고 살아왔다.
앞으로도 생이 있는 한 길을 갈 것이다.


2009년 1월 16일

역사상 모든 독재자들은
자기만은 잘 대비해서
전철을 밟지 않을 것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결국 전철을 밟거나
역사의 가혹한 심판을 받는다.


2009년 1월 17일

그저께 외신기자 클럽의 연설과 질의응답은
신문, 방송에서도 잘 보도되고
네티즌들의 반응도 크다.
여러 네티즌들의‘다시 한 번 대통령 해달라’‘상식이
통하는 세상을 다시 보고 싶다, 답답하다, 슬프다’는
댓글을 볼 때 국민이 불쌍해서 눈물이 난다.
몸은 늙고 병들었지만
힘닿는 데까지 헌신, 노력하겠다.


2009년 1월 20일

용산구의 건물 철거 과정에서
단속 경찰의 난폭진압으로
5인이 죽고 10여 인이 부상 입원했다.
참으로 야만적인 처사다.
이 추운 겨울에
쫓겨나는 빈민들의 처지가
너무 눈물겹다.


2009년 1월 26일

오늘은 설날이다.
수백만의 시민들이 귀성길을 오고가고 있다.
날씨가 매우 추워 고생이 크고
사고도 자주 일어날 것 같다.
가난한 사람들,
임금을 못 받은 사람들,
주지 못한 사람들,
그들에게는 설날이 큰 고통이다.


2009년 2월 4일

비서관회의 주재.
박지원 실장 보고에 의하면
나에 대해서 허위사실을 공표한
한나라당 의원에 대해서(100억 CD) 대검에서
조사한 결과 나는 아무런 관계 없다고 발표.
너무도 긴 세월동안‘용공’이니‘비자금 은닉’이니 한 것,
이번은 법적 심판 받을 것.
그 의원은 아내가
6조 원을 은행에 가지고 있다고도 발표,
이것도 법의 심판 받을 것.


2009년 2월 7일

하루 종일 아내와 같이 집에서 지냈다.
둘이 있는 것이 기쁘다.


2009년 2월 17일
명동성당에 안치된 김수환 추기경의 시신 앞에서
감사를 드리고 천국영생을 빌었다.
평소 얼굴 모습보다 더 맑은 얼굴 모습이었다.
역시 위대한 성직자의 사후 모습이구나 하는
감동을 받았다.


2009년 2월 20일

방한 중인 힐러리 클린턴 미 국무장관으로부터 출국
중 전용기 안에서 전화가 왔다.
그는 전화로 1. 클린턴 대통령의 안부 2. 과거 자기 내
외와 같이 있을 때의 좋았던 기억 3. 나의 재임시의 외
환위기 수습과 북한 방문시 보여준 리더십 4. 다음 왔
을 때는 꼭 직접 만나고 싶다 5. 남편 클린턴 대통령도
나를 만나기를 바라고 있다고 했다.
힐러리 여사가 뜻밖에 전화한 것은 나의 햇볕정책에
대한 지지 표명으로 한국 정부와 북한 당국에 대한
메시지의 의미가 담겨 있는 것 같다.
아무튼 클린턴 내외분의 배려와 우정에는 감사할 뿐
이다.


2009년 3월 10일

미국의 북한 핵문제 특사인 보스워스 씨가
방한했다가 떠나기 직전 인천공항에서 전화를 했다.
개인적 친분도 있지만
한국 정부에 내가 추진하던
햇볕정책에의 관심의 메시지를 보낸 거라고
외신들은 전한다.


2009년 3월 18일

투석치료.
혈액검사, X레이검사 결과 모두 양호.
신장을 안전하게 치료하는 발명이 나왔으면 좋겠다.
다리 힘이 약해져 조금 먼 거리도 걷기 힘들다.
인류의 역사는 맑스의 이론 같이 경제형태가 주도하
는 것이 아니라 지식인이 헤게모니를 쥔 역사 같다.
1. 봉건시대는 농민은 무식하고 소수의 왕과 귀족
그리고 관료만이 지식을 가지고 국가 운영을 담당했다.
2. 자본주의 시대는 지식과 돈을 겸해서 가진 부르주
아지가 패권을 장악하고 절대 다수의 노동자 농민은
피지배층이었다.
3. 산업사회의 성장과 더불어 노동자도 교육을 받고
또한 교육을 받은 지식인이 노동자와 합류해서 정권
을 장악하게 되었다.
4. 21세기 들어 전 국민이 지식을 갖게 되자 직접적으
로 국정에 참가하기 시작하고 있다.
2008년의 촛불시위가 그 조짐을 말해주고 있다.


2009년 4월 14일

북한이 예상대로 유엔 안보리의 의장성명에 반발해
6자회담 불참, 핵개발 재추진 등 발표.
예상했던 일이다.
6자회담 복구하되 그 사이에 미국과 1 대 1 결판으로
실질적인 합의를 보지 않겠는가 싶다.


2009년 4월 18일

노무현 전 대통령 일가와 인척, 측근들이
줄지어 검찰 수사를 받고 있다.
노 대통령도 사법처리 될 모양.
큰 불행이다.
노 대통령 개인을 위해서도,
야당을 위해서도,
같은 진보진영 대통령이었던 나를 위해서도,
불행이다.
노 대통령이 잘 대응하기를 바란다.


2009년 4월 24일

14년 만에 고향 방문.
선산에 가서 배례.
하의대리 덕봉서원 방문.
하의 초등학교 방문, 내가 3년간 배우던 곳이다.
어린이들의 활달하고 기쁨에 찬 태도에 감동했다.
여기저기 도는 동안 부슬비가 와서
매우 걱정했으나 무사히 마쳤다.
하의도민의 환영의 열기가 너무도 대단하였다.
행복한 고향방문이었다.


2009년 4월 27일

투석치료.
4시간 누워 있기가 힘들다.
그러나 치료 덕으로 활동할 수 있는 것 크게 감사.
나는 많은 고생도 했지만
여러 가지 남다른 성공도 했다.
나이도 85세.
이 세상 바랄 것이 무엇 있는가.
끝까지 건강 유지하여 지금의 3대 위기 ─ 민주주의
위기, 중소서민 경제위기, 남북문제 위기 해결을 위해
필요한 조언과 노력을 하겠다.
‘찬미예수 백세건강’


2009년 5월 1일

이제 아름다운 꽃의 계절이자 훈풍의 계절이 왔다.
꽃을 많이 봤으면 좋겠다.
마당의 진달래와
연대 뒷동산의 진달래가 이미 졌다.
지금 우리 마당에는
영산홍과 철쭉꽃이
보기 좋게 피어 있다.


2009년 5월 2일

종일 집에서 독서, TV, 아내와의 대화로 소일.
조용하고 기분 좋은 5월의 초여름이다.
살아있다는 것이 행복이고
아내와 좋은 사이라는 것이 행복이고
건강도 괜찮은 편인 것이 행복이다.
생활에 특별한 고통이 없는 것이
옛날 청장년 때의 빈궁시대에 비하면 행복하다.
불행을 세자면 한이 없고,
행복을 세어도 한이 없다.
인생은 이러한 행복과 불행의 도전과 응전 관계다.
어느쪽을 택하느냐가
인생의 성공과 실패를 좌우할 것이다.


2009년 5월 18일

미국의 클린턴 전 대통령이 내한한 길에
나를 초청하여 만찬을 같이 했다.
언제나 다정한 친구다.
대북정책 등에 대해서 논의하고 나의 메모를 주었다.
힐러리 국무장관에 보낼 문서도 포함했다.
우리의 대화는 진지하고 유쾌했다.


2009년 5월 20일

걷기가 다시 힘들다.
집안에서조차 휠체어를 탈 때가 있다.
그러나 나는 행복하다.
좋은 아내가 건강하게 옆에 있다.
나를 도와주는 비서들이 성심성의 애쓰고 있다.
85세의 나이지만
세계가 잊지 않고 초청하고 찾아온다.
감사하고 보람 있는 생애다.


2009년 5월 22일

버마 혁명민주지도자 등 수 명이 내방.
민주화에 대해서,
나는“버마는 외국의 지지는 충분히 얻고 있으니 이
를 활용해서 안에서 국민이 자력으로 쟁취하도록 노
력하시오”라고 격려했다.


2009년 5월 23일

자고 나니 청천벽력 같은 소식 ─ 노무현 전 대통령이
자살했다는 보도.
슬프고 충격적이다.
그간 검찰이 너무도 가혹하게 수사를 했다.
노 대통령, 부인, 아들, 딸, 형, 조카사위 등
마치 소탕작전을 하듯 공격했다.
그리고 매일같이 수사기밀 발표가 금지된 법을
어기며 언론플레이를 했다.
그리고 노 대통령의 신병을 구속하느니 마느니 등
심리적 압박을 계속했다.
결국 노 대통령의 자살은 강요된 거나 마찬가지다.


2009년 5월 24일

노 대통령 장례식을 정부와 측근들은 국민장을 주장
하는데 가족은 가족장을 주장해 결말을 못 보았다.
박지원 의원 시켜서‘노 대통령은 국민을 위해 살았고
국민은 그를 사랑해 대통령까지 시켰다. 그러니 국민이
바라는 대로 국민장으로 하는 것이 좋겠다’고
전했는데 측근들이 이 논리로 가족을 설득했다 한다.


2009년 5월 25일

북의 2차 핵실험은 참으로 개탄스럽다.
절대 용납해서는 안 된다.
그러나 오바마 대통령의 태도도 아쉽다.
북의 기대와 달리 대북정책 발표를 질질 끌었다.
아프가니스탄, 파키스탄에 주력하고 이란, 시리아,
러시아, 쿠바까지 관계개선 의사를 표시하면서
북한만 제외시켰다.
이러한 미숙함이 북한으로 하여금
미국의 관심을 끌게 하기 위해서
핵실험을 강행하게 한 것 같다.


2009년 5월 29일

고 노 대통령 영결식에 아내와 같이 참석했다.
이번처럼 거국적인 애도는
일찍이 그 예가 없을 것이다.
국민의 현실에 대한 실망, 분노, 슬픔이 노 대통령의
그것과 겹친 것 같다.
앞으로도 정부가 강압일변도로 나갔다가는
큰 변을 면치 못할 것이다.


2009년 5월 30일

손자 종대에게
나의 일생에 대해서 이야기해주고
이웃사랑이
믿음과 인생살이의 핵심인 것을
강조했다.


2009년 6월 2일

71년 국회의원 선거시 박 정권의 살해음모로
트럭에 치어 다친 허벅지 관절이 매우 불편해져서
김성윤 박사에게 치료를 받았다.


 유시민의 추도사


by Bathory | 2009/08/23 17:31 | 간혹 뱉는 말들... | 트랙백 | 덧글(0)

DJ서거에 부쳐...

어젯밤엔 밤샘작업을 하고, 아침에 잠시 토끼잠을 오후시간이 되어 사무실에 들어왔다.

인터넷을 접속하자마자 뜨는 "DJ 서거
.."


노무현을 떠나보낸게 엊그제인듯 한데이젠 DJ마저 떠나버리다니
....


노무현때의 충격 여파 때문인지 의외로 멍한 담담함까지 느껴지고
....


민주화의 상징...인동초...민족통일의 버팀목 등등 표현부터, 쓰레기같은 수구똘아이들의 벼라별 악성


댓글까지......인터넷은 온통 DJ 대한 얘기로 가득 차있다.


잠시 과거를 회상해 본다.....


DJ....
그래, 솔직히 내가 투표권이 생기고 이후부터 한번도 DJ 그의 당이 아닌 사람은 찍어 본적이 없다
.

학생때 치기어린 골수 좌파였다.

한편으론
맑시즘에 대한 동경과 현실에선 DJ 대변되는 민주화세력에게
적당한(?) 타협을 하기도 했었고,

강준만의
[김대중 죽이기]가 나왔을 정말 통렬한 카타르시스를 느끼며, 적극 공감을 하기도 했었고
....


암튼 그게 DJ와 관련된 내 생각의 편린들이라고나 할까...


하지만 지금도 서거와는 별개로 DJ 하면 드는 왠지 모를 짠함이란
....


나에게 짠함이란 아마도 그가 사형선고를 이겨내가며 민주화 투쟁을 했고, IMF에서의 극적인 탈출을 이루어

냈다는
등의 쉽게 형용화시킬 있는 업적 때문만은 아닌것 같다
.
 

아마도 DJ
에게 천형과 같았던  바로 "호남"이라는 화두 때문이 아닐까?....
 


누군가 말했다....지역감정은 악마가 우리 국민을 미워해 선사한 최악의 선물이라고
....


잠깐 생각나는데로 강준만의 글을 인용하면 "호남인을 규정하는 기준은 신분 상승이 불가능한 경색된 신분제도나

유색인종차별과
유사하다
. 이렇게 낙인찍힌 호남인이라는 굴레는 스스로 벗어버릴 없는, 외부에서 강제된

문제다
."라는 말
....


언제나 이말처럼 섬뜩한 화두는 없을것이라고 생각을 한다
.


맞다. 한국에서 "호남" 언제나 유태인이었다.

천형으로
낙인찍혀질 수 밖에 없는 유태인, 혹은 유색인종의 그것과도 같은
천형이고, 21세기에 들어서도

"
빨갱이"이란 치욕적인 모욕까지 들어야 하는 절정의 "파리아도(pariah province)"
.


모두가 다 아는 바, DJ
에겐 언제나 그런 낙인이 따라 다녔다
.


그래선 그는 지역감정 같은 부족주의를 극복하기 위해 지역등권론부터, 심지어 빨갱이란 말까지 감내하며,  

북한을
껴안으려 노력했고, 부족
보다 테제인 '민족'의 통일을 꿈꾸었는지도 모른다.

마치
김구와 여운형이 그랬던것 처럼
......


어쨌건 DJ
영리한 사람이었고, 동시에 자기 운명을 개척하기 위해 죽기 전까지 끊임없이 노력을 하고 열정을

쏟아내던
이다
.

민족을 사랑했고, 민주주의를 사랑했던 대통령....그랬던 그가
노무현이 죽었을 형제를 잃은 같다고 하며

통곡을
했고 그 여파때문인지는 모르지만 너무도 쉽게 우리의 곁을 떠나 가셨다
.


지금의 대한민국...모든 것이 거꾸로 가고 있는 대한민국에서  한사람, 아니 한 개인으로 국한 할수 없는 

진정한 민주주의의
별이 졌다....
아니 20세기가 끝났는지도 모른다.

 

어설픈 정파적 논리나 주변부 얘기는 뒤로 한 채, 진심으로 DJ 명복을 빈다.

 


"좋은
세상에서 영면하시며 우리 국민들
여전히 많이 사랑해주시길...내마음속의 대통령이여...."

 

 

마음속의 대통령 두분을 떠나 보내고 절절함으로 가득 찬 2009 어느 날….

by Bathory | 2009/08/20 15:12 | 간혹 뱉는 말들...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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